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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점오] 4.5 (4-1)적다 2019. 7. 16. 12:00
[소설 사점오] 4.5 (4-1)
"신이 수여한 영혼은 거룩한 존재이다.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영혼을 치유할 수는 있다" - 연
터질 듯한 호흡이 가파르게 가슴을 죄어 오는 것 같았다. 어제부턴가 그랬던 것 같다. 이 답답함.
무엇인가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 아마도 처음 느끼는 감정인 듯. 아니, 왠지 모르게 이것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느껴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생각해내려 애써 보지만 이내 포기한다.
내 머릿속은 정리하기가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뭐,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어떤 한 생각을 할라 치면 다른 상념들이 뇌 안으로 침투해 버려서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냥 걷기로 했다. 걷는 건 쉬우니까. 시선은 정면 -보다 아주 약간 아래- 에 고정시키고, 왼발 오른발을 순서대로 내딛기만 하면 되니까. 생각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턱대고 걷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눈은 뜨고 있었으니까.
여기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 A시이다. 이 도시 속 거리를 난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걷고 있는 것이다.
걷다 보니까 문득 이런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여기 이 거리들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무척이나 더러운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시장 -난 그분의 성함 같은 건 잘 모른다- 이 취임하고 나서는 선거전 유세 현장에서의 공약을 이행해 '깨끗한 도시, CLEAN A시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다소 거창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 시민들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정확하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더럽고 악취가 나던 곳을 깨끗하게 해 준다니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선 시작된 것은 건물의 재구성이었다. 건물이 오래됐다고 생각되는 곳은 어김없이 파괴되었고, 포클레인과 레미콘, 지게차가 투입되어 뚝딱하고 새로운 건물을 만들어 냈다.
공사장에서의 인부들은 한결 같이 '부공'이라 쓰여 있는 작업복을 입고 일을 했는데, 그러고 보니까 여러 장소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공사였는데도 모두 '부공'이라는 단어가 어김없이 표기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불이 켜진 무척 환한 공사장에서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는 공사장 아저씨들의 땀 흘리는 모습은 열정적이라기보다는 필사적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입시생 신분이었던 나로서는 피곤함에 이끌려 힐끗 바라보기만 하고 그대로 집에 곧장 돌아가 잠에 이끌려 곯아떨어지기 일쑤였으니까.
매일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이었지만, 도시가 점점 깨끗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차가 다니는 도로 가로등에는 자상해 보이는, 또한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장의 사진과 그 밑에 '클린 A시 조성기간 : 2001년 8월 15일 ~ 11월 6일, 협력업체 : 부공 건설'이라고 커다란 글씨로 쓰여있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있는 시민 게시판에도 떡 하니 포스터가 붙여 있었다.
거기엔 조성기간이 끝나고 난 후의 A시 조감도도 그려져 있었는데, 정말 엄청 깨끗하고 발전되어 보이는 건물들은 온통 새하얗고 반듯하며 나무들도 무척 많아서 흰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 속을 거니는 시민들의 얼굴은 비록 그림이었지만 모두들 활기차고 명랑한 쾌활한 웃음을 짓고들 있었다.
그 밑에 보일 듯 말듯한 작고 흰 글씨로 '본 그림은 이미지 사진입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본 것은 그 포스터를 몇 번이나 보고 난 나중의 일이었다.
몇 년 전 도시 전체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던 그 프로젝트가 지금 우리 도시의 환경을 크게 개선시켰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새 건물은 곧 헌 건물로 바뀌어 갔고, 급하게 심었던 커다란 녹색 나무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지금은 몇 그루 남지 않았다.
찌는 듯한 불볕더위와 함께 찾아오는 거리 구석구석에서 코 끝에 전해 내려오는 악취가 저절로 인상을 찡그리게 했다. 거리의 사람들도 대부분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의 클린 A시가 어떻게 이렇게 돼버린 것일까? 기억들을 더듬어 보자면 내가 보았던 일련의 뉴스 보도를 통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깨끗한 도시를 만들자는 새 시장의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듯했다. 조성기간이 끝나고, 주변에서 우리 도시를 보는 시각은 굉장히 달라졌다.
내가 보아도 무척이나 산뜻한 새 건물들은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다.
악취로 가득했던 저수지와 하천은 저 멀리 어딘가에서 깨끗한 물로 실어와 정화시켰고, 길가마다 오색빛깔의 꽃들을 심어,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흐뭇한 웃음을 자아냈다.
이러한 우리 도시의 곳곳의 모습은 텔레비전 방송사에서도 찍어 뉴스에서 보도를 했고, 끝에는 새 시장의- "오래된 구식 건물들은 모두 헐어버리고 새롭고 산뜻한 도시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제 모토입니다.
시민들의 웃음과 활기찬 생활들을 보기만 해도 저에겐 힘이 납니다. 우리 A시는 이제 새로운 도시로 거듭날 것입니다"라는-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시장은 순조롭게 도시발전에 이바지하는 듯했다.
그러나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했던가? 그 순박하고 인상 좋아 보이던 시장은 우리가 몰랐던 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다.
시장은 도시계획 중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특정 건설업체에 뒷돈을 받고 전 공사를 맡겼으며, 그나마도 공사기간을 너무 단축한 나머지 완공 뒤 얼마 못 가 여러 건물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하천의 수질 등급을 속여 먹을 수 있는 물이라고 속였으며, 시민이 낸 세금을 횡령 해 자신과 가족들의 해외여행 등에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들이 드러남에 따라 시장은 맨 처음 뉴스에 나왔을 때보다 두 배이상의 시간을 할애하여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 뉴스를 접한 시민들은 '저럴 줄 알았다'는 반응보다는 신뢰하고 성원했던 만큼 더욱 큰 배신감을 느껴 허탈해했고 또한 분노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잠잠해질 무렵 현 시장의 재임 기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을 뽑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후보 누구누구가 나왔다는 얘기를 어쩌다가 흘러들었을 뿐 누가 새 시장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입시생이었고, 새로운 시장보다는 새로운 교육 장소, 즉 대학 입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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